웨이모와 챗지피티
바야흐로 ‘사람들이 체감하는’ AI시대가 시작됐습니다. 10년 전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바둑을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미래’에 대한 흥미거리 정도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동안에도 AI는 꾸준히 발전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챗GPT가 사람들 옆으로 다가오면서 AI(특히 챗지피티, 제미나이와 같은 LLM AI)와 사람 간의 관계에 전환점이 생긴 듯합니다.
올해 초 미국 캘리포니아 도시들에서 운전자 없는 무인택시들이 버젓이 도로 위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저를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놀랍냐?(You impressed?)” 하고 무심히 지나가는 그곳 사람들을 보면서 상상하던 미래의 세상이 벌써 현재가 되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1~2년 전 주변의 챗GPT 사용자들이 챗GPT에 대해서 예찬을 할 때도 저는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챗GPT가 그동안의 도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국제부부의 얘기였는데, 문화차이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배우자에게 부탁을 해도 흔쾌히 들어주지 않던 것을 챗GPT한테 “이런 상황에서는 배우자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니?”라고 묻고 챗GPT가 알려주는대로 말을 하니까 신기하게도 배우자가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경험 많은 현인이 들려주는 ’조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종래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정보’와는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변호사의 진화, 의뢰인의 진화
1년 반 동안 미국의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다가 귀국하니 AI의 위력에 대한 체감도가 휠씬 더 큽니다. 빠른 변화에 대한 적응력, 특히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적응력은 단연 한국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제 주변의 변호사들을 보면 AI를 통해서 많은 진화를 하고 있고, 젊은 변호사들뿐만 아니라 중견 변호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변호사들이 AI를 통해서 진화하는 만큼 의뢰인들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1~2년 전의 의뢰인들과 최근 의뢰인들의 법률지식이 확연히 다릅니다. AI를 활용해서 전문가 수준의 훌륭한 법률분석 보고서를 정리해오셔서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상담을 받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의뢰인들이 AI를 통해 많은 법률지식을 갖춘 상태임에도 상담시간이 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종전보다 상담시간이 더 길어진 느낌입니다. AI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상담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볼 때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질문의 최종목표
첫째는, 의뢰인분들이 AI에게 묻는 질문의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분쟁상황에서 의뢰인분들이 AI에게 던지는 질문은 ‘내가 상대방에게, 또는 상대방이 나에게 청구할 권리가 있는가, 소송을 하면 누가 이기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질문은 법률분쟁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법적으로 누구의 말이 옳고, 소송을 하면 누가 이기는지에 대한 대답은 문제해결의 측면에서 최종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최종목표는 O/X처럼 ‘내가 이기냐 상대방이 이기냐’가 되어서는 안되고 ‘최선의 해결방안이 무엇이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나와 상대방의 현재 상황, 앞으로 투입될 시간과 비용, 증거확보의 용이성, 감수해야 할 리스크, 결과의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의뢰인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을 나열한 다음 여기에 의뢰인이 처한 상황을 대입해서 어떤 것을 최선의 수단으로 선택할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AI가 질문자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어도 실무관행 등 법적 절차의 세부내용, 준비해야 할 증거, 비용과 시간을 고려한 효율성, 나와 상대방의 상황에 기초한 대안 등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충분한 조언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종합적인 조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쌍방향으로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세부사항을 확인해야 하는데 현재의 AI는 쌍방향 질문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정보를 확인한 뒤 최종결단을 내릴 때가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현재의 AI는 결단을 돕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의 감정이 미치는 영향
둘째, 아직까지는 AI가 답변할 때 질문자의 감정을 고려하도록 설계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의 경우, 적어도 저의 경우에는 의뢰인의 현재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도 고려하게 됩니다. 의뢰인들은 대립상황에 놓여서 감정적 압박, 피로,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변호사가 의뢰인의 감정을 풀어주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습니다. 정확한 법률정보와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인간인 변호사는 의뢰인이 던지는 질문의 배경, 경우에 따라서는 그 감정적 배경을 이해하기 때문에 최선의 해결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더 고려해야 할지, 혹시라도 감정과 결부된 선택을 할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최종 만족을 주는 방안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합니다.
상담시간 중 일정 부분은 아마도 의뢰인이 몰입 상태에서 벗어나 제3자의 객관적 관점을 이해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일 것입니다. 의뢰인이 감정을 배제한 상태로 무엇이 최선의 해결방안인지 확신에 이르렀을 때 평화로운 표정을 보게 됩니다.
미래의 모습
이 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땐 그랬었지” 하는 과거 한 때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AGI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AI가 사람보다 더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비록 AI 자신은 감정이 없지만 사람의 감정을 사람보다 더 잘 읽고 더 잘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미 AI의 음성대화 기능은 사람의 목소리 크기, 속도, 어조 등을 기초로 감정을 읽고 그에 맞춰서 반응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인터넷이 인류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꾸었고, 핸드폰이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습니다. 지금은 AI의 차례인데, 그 진화 속도가 인터넷, 핸드폰, 스마트폰에 비해서 급격하게 빠른 느낌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정보가 인터넷에 쌓이고, AI를 탑재한 로봇이 물리적 공간에서 직접 보고 들은 정보까지 축적한다면 AI의 진화 속도는 더욱 폭발적이겠지요. 일반인이 접하는 챗GPT, 제미나이와 같은 LLM 외에도 각종 산업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AI는 경쟁적인 속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들의 역할 중 많은 부분을 AI가 대신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사법시스템 전체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마트가 공급업체들과의 계약조건 협상을 AI에게 맡겼고 그 결과 공급업체들의 약 75%가 사람보다 AI와 협상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법적인 분쟁이 생겼을 때 당사자들에게 (1) 사람, (2) AI, (3) AI와 사람의 조합 중 누구로부터 판정을 받겠냐고 물으면 어떤 답변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AI에 오류와 왜곡의 가능성이 있지만 인간에게도 오류와 왜곡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조차도 인간이 아닌 AI를 더 신뢰하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AI의 긍정적 가치와 변수
AI가 가져다 준 큰 가치가 있습니다. 누구든 그 사람의 배경과 무관하게 양질의 정보와 조언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알음알음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 연락을 취했습니다. 오류나 불합리함이 있어도 사람들에게 정보가 없기 때문에 모르고 넘어가기도 했지요. 이런 환경에서는 인맥과 사회적 영향력이 중요했습니다. 기존에도 인터넷 포털이 있었지만 정보의 홍수라 불리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양질의 정보를 선별하기 어려웠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조언을 받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누구나가 각 영역의 전문가들을 자신의 친구로 둘 수 있습니다.

정보나 조언 외에도,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AI의 도움을 받아서 무언가를 이루기 좋은 환경이 되었습니다. 창의적인 AI 활용례가 많이 나올 것이고 이러한 AI 활용법이 전파되어 더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겠지요. 이미 LLM AI의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문답 기능을 넘어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어 나옵니다.
다만 변수도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 ‘블랙미러’ ‘보통사람들’ 편은 삶에 필수적인 서비스에 대해서 서비스 등급이 차별화되고 구독료가 인상되면 어떤 비극이 생기는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만약 개인용 AI 서비스의 구독료가 큰 격차로 차등화된다면 그에 따라서 인간의 진화도 큰 격차로 차등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의식주에 더하여 교육, 의료, 교통, 통신 등의 분야에 공공의 개입이 불가피하듯이, 어느 시점에는 개인용 AI 서비스에도 격차를 해소하고 AI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규제 내지 정부보조가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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