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숨은 하자
A씨는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했고 그로부터 10년 넘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래층으로부터 누수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관리사무소가 아래층에서 벽체 일부를 깨고 피트 내부를 확인한 결과 A씨 세대의 배수관 일부가 미시공 상태로 끊어져 있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아파트 신축 당시 A씨 세대의 뒷베란다 하수구와 공용배수관을 연결해야 하는데 그 연결 배수관을 누락하고 시공했던 것입니다.
공용배수관과 연결되는 배수관은 A씨 세대가 단독으로 사용하는 전유부분이므로 원칙적으로 아래층 누수에 대한 책임은 A씨에게 있습니다. A씨로서는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책임을 지려니 억울합니다.
이 경우 A씨는 입주한 지 10년이 넘은 이 시점에 분양자와 시공자를 상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분양자의 책임
1. 공동주택관리법에 의한 책임
아파트에 적용되는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배관 중 전유부분 배관에 대한 하자담보기간은 건물을 인도를 받은 때로부터 3년입니다. 분양계약서에서 하자담보기간을 이 보다 더 길게 정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A씨는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한지 3년이 지났고, 그동안 배관에 대해서 하자 주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3년의 하자담보기간 경과로 인해서 더 이상 분양자에게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2.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책임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A씨 세대의 배관 미시공은 입주 전부터 이미 존재한 하자이므로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조 제1호에 따라 5년의 하자담보기간을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A씨가 입주한지 5년도 넘게 지났기 때문에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하더라도 분양자에게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3. 채무불이행 책임
한편, 분양자는 분양계약 위반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책임을 질 수도 있습니다. 분양계약에 따르면 분양자는 수분양자에게 하자없는 완전한 아파트를 공급해야 하는데 공급아파트에 하자가 있다면 분양자는 분양계약을 위반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분양계약 위반을 이유로 분양자에게 채무불이행책임을 묻는 데에도 소멸시효가 있습니다. 보통 상법에 따라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문제는 5년의 소멸시효가 시작되는 기산점입니다.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하는데, 그렇다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언제인지 문제됩니다. 판례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그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또한 판례는 “하자가 발생한 때” 이미 손해가 현실화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하자가 발생한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하자가 발생한 때”가 언제인지 문제됩니다. 위 사례에서 배관의 미시공 그 자체를 하자로 볼 경우 과거 배관 미시공 상태로 공사가 끝난 시점이 “하자가 발생한 때”이므로 그로부터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이 됩니다. 반면에,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37조 제2호에 따라 배관 미시공이라는 “공사상의 잘못으로 인한 누수 등이 발생하여 건축물 또는 시설물의 안전상ㆍ기능상 또는 미관상의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결함이 발생한 경우”를 하자로 볼 때에는 최근 배관 미시공으로 인한 누수가 발생한 시점을 “하자가 발생한 때”로 보고 아직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재판 중에 누수의 정도, 누수 흔적을 기초로 한 최초의 누수 시점 등 사실관계를 놓고 다투어질 부분입니다. 다만 기존 판례의 경향, 재판실무에 비추어 많은 재판부가 채무불이행책임도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입니다.
시공자의 책임
1. 공동주택관리법에 의한 책임
공동주택관리법에 의할 때 만약 시공자가 분양자로부터 아파트 신축공사를 일괄 도급받아 공사를 했다면 시공자는 공동주택관리법상의 하자담보책임을 집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배관 미시공으로 인해서 누수 등 하자가 발생한 데 대한 하자담보기간은 건물을 인도를 받은 때로부터 3년입니다. A씨의 경우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한지 3년이 지났으므로 하자담보기간의 만료로 인해서 더 이상 시공자에게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2.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책임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분양자가 돈이 없어서 하자담보책임을 질 능력이 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시공자에게 하자담보책임을 인정합니다. 위 사례에서 분양자에게 돈이 있는지 없는지 불분명하지만, 설사 분양자에게 돈이 없어서 시공자에게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하자담보기간인 5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A씨는 시공자를 상대로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3. 채무불이행 책임
채무불이행책임에 관해서도, A씨는 분양자와 분양계약을 체결했고 시공자와는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므로 시공자를 상대로 계약위반을 이유로 채무불이행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4. 불법행위 책임
만약 시공자가 자재비를 줄여서 공사원가를 낮춤으로써 부당하게 자신들의 수익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고의로 배관을 미시공한 것이라면 계약위반을 넘어서서 불법행위책임을 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입니다. 비록 A씨가 미시공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때로부터는 아직 3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불법행위 시점, 즉 배관 미시공 상태로 건물을 인도받은 때로부터는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관한 소멸시효도 이미 경과해서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것도 어렵습니다.

결론은
결론은 이렇습니다. A씨는 시공자에게는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분양자를 상대로는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채무불이행책임을 물을 여지는 있는데, 이 경우 앞서 본 것과 같이 소멸시효가 문제됩니다. 기존 판례의 경향, 재판실무에 비추어 많은 재판부가 채무불이행책임도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입니다.
소멸시효 제도는 장기간 지속된 현상에 기초해서 형성된 질서를 안정시킬 필요성과 권리를 가진 자를 보호할 필요성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점으로 나온 것입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할 필요성보다는 현재의 질서를 유지할 필요성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사회적 약속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증거들이 사라지면서 오판의 가능성이 커지는 점도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 분양자, 시공자, 시공자의 하도급업체, 수분양자, 만약 수분양자가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했을 경우 새로운 집주인 등 여러 주체가 서로 법률관계를 맺고 있는데, 누가 잘못했는지 책임을 따지고 들어갈 경우 법률적인 이유로 또는 현실적인 이유로 가장 잘못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리지 못하고 중간의 누군가가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복잡하게 과거는 따지지 말고 현재를 놓고 새출발을 하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 사례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지만 행사하지 않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없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10년 전의 배관 미시공에 대해서 이제 와서 분양자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책임을 갑자기 물리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하자가 벽 속에 있어서 10년 넘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집주인에게 그 피해를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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